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4

2005/05/27 04:40
또 때로는 비바람이 몰아치지만

언젠가 이 재미없는 세상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일을 보았습니다
낯선 이들은 서로 말조차 건네지 않고
하늘마저도 그들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는
이 을씨년스러운 세상이건만
느린 음악이 흐르는 어느 무도회장에서
낯 모르는 두 사람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아무런 거짓도 없이
그들은 만났습니다
그리고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 그들은
서로 안고 싶고
안기고 싶다는
인간의 가장 꾸밈없는 갈망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이런 확신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은 더
'느린 음악'을
온 세상이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고



느린 음악이 흐를 때
나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가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다가왔습니다
그저 미소만을 나누는
타인으로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내 손에 손을 맡기고
내 어깨에 머리를 얹고
내몸에 몸을 바싹 기대어왔습니다
음악이 계속 흐르는 동안
가슴 속의 짙은 외로움에
그가 몸을 떠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그는 그의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여러해가 지난 지금
나는 이따금 눈을 감고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그 몇 분을
다시 떠올리곤 합니다


진정 누군가를 잘 알수 있는 것은
솔직한 순간입니다
거짓에 찬 삶이라면 한평생을 지내더라도
그보다 더 누군가를 잘 알수 없습니다


남남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여정에서 한번도 마주친 적도 없고
한번도 같은 시간을 나누어 가진 적도 없는
그런 사이입니다
하지만 한면이라도 마주치거나 함께 시간을 나누었다면
그들은 더 이상 남남일 수는 없습니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 침묵이 흐르면
그들은 이내 불안합니다
저마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기 때문이지요

침묵 속에서도 서로가 편안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아주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의 달빛이
호수 위에서 은빛 물결로 부서질 때
나는 말없이 당신 곁에 앉아
물 위에 조약돌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이따금 내손은 꼭 쥐어 주곤 하였습니다
라디오도 TV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있었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빨리 지나갔던지
당신은 또 얼마나 가깝게 느껴졌던지

아마도 우리는 좀더 자주 함께 앉아
아름답고 오랜 침묵의 시간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밤을 멀리 쫓아버리는 눈부신 아침해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더랬습니다
사랑에 취한 시인의 아름아운 노래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더랬습니다
또 이슬이라고들 하던가요, 그 아침 안개에도
나는 마음을 빼앗겼더랬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지금
그 모든 것들이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왠일일까요


나는 압니다
당신과 함께 있기에
내가 좀더 자주 미소를 짓고
그리 쉽게 회내지도 않음을

또 하늘의 해가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삶이 더욱 달콤하다는 것을

그것은
당신과 함께라는 것, 그것이
나를 아주 다른 세계로
바로 사랑이라는 세계로
데려다 주어서입니다


사랑하는 그 누군가와 나란히 걸을 때
우리의 가는 길이 조금 더 분명해지고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지고
왠지 키까지 조금 더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누군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또 머리를 기댈 푸근한 어깨가 필요하다면
거기에 내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이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면
나는 조용히 물러나
당신에게 방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셔야 합니다
당신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내가 알려면
당신의 도움이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말로 마음을 주고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몸짓으로 마음을 주고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침묵으로 마음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직도 마음을 주고받을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주고. 받기.
마음을 주는 것보단,
마음을 받는 게 더 힘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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